節制使李先生奉安文 幷實蹟
(載於杜門洞書院誌)
先生諱沃陽城人侍中陽城君春富之子官江陵道節制使從三品太祖革命徵以資憲知中樞院事終不應命自以前朝世臣義同休戚自舊京退歸歛跡矢以罔僕朝廷嘉其節義贈諡靖節 | 嗚呼先生陽城巨族麗朝名門先生趾美忠孝兩存世事險巇少流東原擊退海寇朝廷授爵誠心格天父寃能復新 朝受命屡下徵辟自以世臣義同休戚恬退舊京欲泯形迹扶綱植紀矢以罔僕百世仰慕千秋義節用伸虔告敢薦泂酌 |
아! 선생은 양성(陽城)의 거족(巨族)이요, 여조(麗朝)의 명문후예(名門後裔)이십니다. 선생은 조상(祖上)의 미덕(美德)을 그대로 실천(實踐)하여 충효구전(忠孝俱全)하시었소. 세상(世上)일 험하고 가팔라서 젊어 한때 강릉(江陵)에 유배(流配)되셨지만 왜구(倭寇)를 격퇴(擊退)하신 공으로 조정(朝廷)에서 벼슬내리니
지성(至誠)이 하늘에 닿아 아버님의 원한 풀어드리셨소. 새 조정(朝廷) 들어서 누차 벼슬하라 불렀으나 여조(麗朝)의 세신(世臣)으로 휴척(休戚)을 같이 함이 의리(義理)라 하시고 구경(舊京)에서 조용히 물러나 형적(形迹)을 감추고자 하시었소. 이는 불복(不服)을 맹서(盟誓)하고 강상(綱常)을 붙잡아 심음이니 백세(百世)에 앙모(仰慕)받는 천추(千秋)의 의절(義節)이옵니다. 이 뜻 경건(敬虔)히 고하옵고 감히 맑은 술 올리나이다.
「참고」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에는 72현(七十二賢)만 모셔 계신 줄로 알기 쉬우나 현재(現在) 이 서원(書院)에 모신 이는 117위(百十七位)이다. 세칭72현(世稱七十二賢)이라 함은 이성계(李成桂)의 무력(武力)에 의한 정권찬탈(政權簒奪)에 불복(不服)하여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간 72인(七十二人)을 말하는데 두문동(杜門洞)밖에서 같은 절의(節義)로 순절(殉節) 항절(抗節) 자정(自靖)한 충신(忠臣)들도 허다(許多)하여 그 중 사증(史証)이 적확(的確)한 이들만 뽑아 이 서원(書院)에 함께 모신 것이다. 실(實)은 72현(七十二賢)이라 해도 그 중 성명(姓名)이 확실한 분은 50여(五十餘)분 뿐이고 나머지는 성(姓)만 알려진 이, 이름만 알려진 이,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다. 현재(現在) 이 서원(書院)에는 절의(節義)의 범주(範疇)를 육반(六班)으로 나누어 표절실(表節室) 순절반(殉節班)에는 송암박문수(松菴朴門壽) 등 16인(十六人), 표절실(表節室) 항절반(抗節班)에는 수은김충한(樹隱金冲漢) 등 31인(三十一人), 표절실(表節室) 정절반(靖節班)에는 백죽당(柏竹堂) 배상지(裵尙志) 등 7인(七人), 순절실(殉節室) 순절반(殉節班)에는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 인재(麟齋) 이종학(李種學) 등 11인(十一人), 항절실(抗節室) 항절반(抗節班)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 절제사(節制使) 이옥(李沃),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 등 33인(三十三人), 정절실(靖節室) 정절반(靖節班)에는 롱암(籠巖) 금주(金澍) 등 19인(十九人)이 봉안(奉安)되어 있다.
[소재지:경기도 개성]